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합스부르크 가문 (문단 편집) == 개요 == > ([[라틴어]]) Bella gerant alii, tu felix austria, nube! > ---- > ([[독일어]]) Kriege führen mögen andere, du, glückliches Österreich, heirate! > ---- > 다른 이들은 [[전쟁]]을 하게 두어라, 너 행복한 오스트리아여, [[결혼]]하라![* 표어는 아니고 유명한 [[시구]]다. 뒤에 이어지는 문장은 'Nam quae Mars aliis, dat tibi regna Venus(마르스 신이 다른 왕국들에게 선사하는 것을 그대는 베누스 여신이 선사하므로)'이다.] > [[프리드리히 3세(신성 로마 제국)|A.E.I.O.U.]][* 합스부르크 가문의 표어(motto)이자 프리드리히 3세의 서명. [[유로파 유니버설리스 4]]의 유명 모드인 Meiou & Tax, 일명 메죽 모드의 모드명이 여기서 따온 것이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Habsburgkaiser.jpg|width=100%]]}}} || ||<:> {{{#ffcc21 '''▲ 합스부르크 및 합스부르크로트링겐 왕조가 배출한 역대 황제들의 초상화(1910년작)'''}}}[* 자세히 보면 [[프란츠 2세]]와 [[페르디난트 1세(오스트리아 제국)|오스트리아 제국 페르디난트 1세]]의 초상화가 바뀌어 그려져 있다.] || || [[파일: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 황실.jpg|width=100%]] || ||<:> {{{#ffcc21 '''▲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ffcc21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성립 이후 황실 구성원'''}}} || 13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오스트리아]]를 거점으로 [[중부유럽]]의 패권을 휘어잡았던 가문이다. [[신성 로마 제국]]의 제위를 세습하면서 [[근세]] [[유럽]]의 얼마 안되는 황제 가문으로서 최고의 권위와 영예를 누렸다. [[19세기]]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칭제 이전까지 유럽에서 황제가 있었던 국가는 합스부르크 왕조의 신성 로마 제국, 오스만 왕조의 [[오스만 제국]], [[로마노프 왕조]]의 [[러시아 제국]] 뿐이었다.[* 유럽에서 [[황제]], [[제국]]을 칭하려면 [[로마 제국]]의 후예여야 한다. 오스만 제국과 러시아 제국은 로마 제국의 동쪽이었던 [[동로마 제국]]의 후예임을 자처했다. [[대영제국]]으로 전세계를 호령할 당시의 [[영국]]도 정작 공식 국호는 [[제국]]이 아닌 그레이트 브리튼 연합왕국이었으며, [[영국 국왕]]의 공식 칭호도 황제가 아닌 왕/여왕(King/Queen)이었다. 마찬가지로 신성 로마 제국보다 더 강한 국력을 자랑한 [[프랑스 왕국]]의 태양왕 [[루이 14세]]조차도 끝까지 왕으로 남았고, 황제를 칭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왜냐면 프랑스 왕국의 국교였던 [[가톨릭 교회]]가 인정하는 유럽의 유일한 황제는 신성 로마 제국 황제 뿐이었기 때문에 실제 국력이 어떻든 가톨릭 교회 중심 구체제하의 프랑스 왕국은 죽었다 깨어나도 제국이 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프랑스 혁명]]으로 가톨릭 교회 중심의 구체제가 한번 무너지고 난 후에 집권한 [[나폴레옹]]이 등장하고 나서야 프랑스는 비로소 황제를 칭했다. 황제 나폴레옹의 [[프랑스 제1제국]]이 몰락한 이후 다시 돌아온 [[부르봉 왕정복고|부르봉 왕조]]의 [[루이 18세]]는 나폴레옹의 칭제를 무르고 다시 왕을 칭했는데 기껏 올라갔던 프랑스의 황제국 지위를 스스로 포기하고 다시 왕국/왕으로 돌아간다는, 동양적 시각으로는 너무나 이상하게 보이는, 이런 부르봉 왕조의 행동은 옛 질서를 복구시키고자 했던 그들 입장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 당시의 프랑스도 여전히 엄연한 유럽 강대국의 한 축이었으나 부르봉 왕조가 신봉한 가톨릭 교회 중심 유럽 구체제 질서의 세계관에서는 실제 자신들의 국력과는 무관하게 프랑스는 황제국이 아닌 왕국이어야 했던 것이다. 다만 이와 별개로 프랑스 왕국은 신성 로마 제국의 국력과 맞먹거나 더 강했고 뿌리가 신성 로마 제국과 같은 [[프랑크 왕국]]이기 때문에 프랑스 국왕은 황제만 아닐 뿐이지 역사, 정통성, 권위면에서 신성 로마 제국 황제에게도 별로 꿀리지 않았다.] 합스부르크 왕조가 지배했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1918년 [[제1차 세계 대전]]에 [[동맹국]]으로 참전했다가 패전함으로 인해 제국이 해체되고 본거지인 오스트리아를 비롯한 합스부르크가 지배했던 모든 나라들이 군주제와 귀족제를 폐지함으로써 모든 제위와 왕위를 상실하고 특권이 소멸했지만,[* 다만 헝가리의 경우 명목상 왕국으로 남았기 때문에 [[카를 1세]]가 헝가리 왕위라도 되찾으려고 했으나 섭정을 자처하던 [[호르티 미클로시]]가 정작 합스부르크 가문이 돌아오는 것은 막아버리고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는 공산화되어 [[헝가리 인민 공화국]]이 되었기에 무산되었다. 또 [[스페인]]의 [[프란시스코 프랑코]]가 자신의 사후에 과거 스페인의 왕실이었던 [[압스부르고 왕조|합스부르크]]의 후계자 [[오토 폰 합스부르크]]를 [[스페인 국왕]]으로 추대하는 것을 고려해보기도 했지만 오토 폰 합스부르크 본인이 거부했고 [[보르본 왕조|스페인계 부르봉 왕조]]의 복고가 이루어졌다.] 여전히 유럽인의 향수를 자극하는 선망의 명문가다. 합스부르크라는 명칭은 [[루돌프 1세|합스부르크 백작위가 대표적인 작위였던 초창기]]에나 쓰였고, 이후로는 조상의 뿌리를 기억하는 일이 유행한 18세기~ 19세기에나 나타났다. 특히 [[프리드리히 실러]]의 유명한 1803년작 역사 담시 합스부르크 백작에 힘입어 널리 통용되었다. 이전에도 합스부르크라는 명칭을 쓰는 가문은 있었지만, 잉글랜드 워릭셔 출신인 덴비의 백작들이 족보를 위조하면서 쓴 명칭에 불과했다. 그 이전까지는 대표 작위가 [[오스트리아 공국]]-[[오스트리아 대공국]]이었기 때문에 오스트리아라는 명칭으로 주로 불렸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